8월의 크리스마스: 심은하, 추억이 될 수 없는 그녀 /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영화

"아니야 난 괜찮아" 대학시절, 2년을 바친 시험에 떨어졋을 때,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할 수록, 나는 더 비참해졌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그렇게, 괜찮은 듯 살아가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죽을 병에 걸렸다. 그는 마지막 잎새를 기다리는 갸날픈 소녀가 아닌, 세상풍파 다 버티고 살아온 백장노인도 아닌, 30대 남자 유정원(한석규)이다. 

푸른하늘, 빨간색 스쿠터, 그리고 아름다운 다림에게 호쾌하게 "남자 친구 없어요오?"라고 묻는 정원(한석규), 모든게 완벽하다. 이렇게 미소짓는 나날들을 죽음 앞에서 그는 그저 어제 오늘을 살 듯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도 언젠간 추억으로 그친다며, 모든 걸 내려놓은 그에게 구청 주차단속 직원 다림(심은하)이 다가온다. 첫만남에 정원은 다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경험 상 단 것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그 때문인지, 여유롭고 호쾌한 정원의 인상 때문인지 다림은 은근슬쩍 티를 내며 석규에게 다가오다가도, "오기 싫어서 그냥 안왔어요"하고 휙 가버린다. 하지만 어느세 그녀는 조금씩 꺼져가던 정원의 마음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던 것이다. 어색하게 놀이동산 운을 떼며 우물쭈물할 때는 썸 탈 때의 그 즐거운 줄타기를 느끼게 되기도 했다. 다림이 마음속에 자리잡자, 초연했던 정원은 오열한다. 처음으로 이 세상을 등지는 아쉬움, 밥 한 숟가락 더 퍼먹어도 떨쳐내버릴 수 없는 이 죽을 병을 붙잡고 이불 속에서 울음을 터뜨려버린 것이다. 담담했던 그였기에 조용한 방에서 입을 틀어막고 끅끅 울어버리는 그의 감정은 배가 되어 다가왔다. 

 

 

8월의 크리스마스 / 출처: https://namu.wiki/w/8%EC%9B%94%EC%9D%98%20%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

 

이제 그에게 사랑은 추억이 아니다.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는 할머의 사진이 가족들에게 평생남 듯, 다림은 정원에게 평생남을 사랑을 안겨준 것이다. 다림에게 차마 죽을음 알리지도 못하고 정원의 나래이션이 흘러나온다. 
"내 기억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살아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이 나래이션은 그가 차마 다림에게 보내지 못했던 편지일 수도, 마지막 눈을 감으며 생각했던 마음 속 말일 수도 있다. 어느쪽이든 다림에게 고맙다는 그의 담담한 말은, 초원 사진관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을 보며 흐믓하게 웃는 다림과 겹쳐 더욱 먹먹하게 한다. 완전히 꺼져버린 불씨를 바라보며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느끼 듯,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먹먹하다. 평범하게 담겨있던 정원(한석규)의 추억에 돌멩이 하나가 퐁당 빠져버려 잔물결이 일어나 듯 고요하고 잔잔하다. 조용히 사랑하고, 조용히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 과정들이 모두 공감되고 그렇기에 더욱 먹먹하고 아리다. 8월의 크리스마스. 더운 여름날, 마지막 페이지를 써가고 있던 정원만이 만낄할 수 있는, 그에게 더없이 큰 선물같은 날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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