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라면 먹고 갈래요? 그리고, 그 날 밤엔 아무일도 없었다.

그 유명한 대사, '라면 먹고 갈래'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나온 영화다. 멜로 대가 허진호 감독이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내놓은 영화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가 순한 맛이었다면 이영애는 매운 맛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2가지 있다. 첫째, 은수(이영애)가 '라면 먹고 갈래요'를 시전한 후, 그 날 밤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영애가 자고 갈래요라고 한 번 더 물어본다는 것.

 

은수가 라면이라면 상우는 북엇국이다. 사랑의 온도가 다르듯 둘의 온도차는 심했다. 사랑이 변한게 아니라 처음부터 은수는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은수는 항상 라면을 먹는다. 라면은 쉽게 끓여서 간단히 먹을 수 있다.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처럼 은수한테 사랑은 그저 인스턴트일 뿐이다. 상우를 처음 만난 곳도 기차역이다. 사람들이 머물지 않고 바로바로 떠나가는 기차역.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쉽게 헤어질 것으로 예견된 건 아닐까. 반면 상우는 진득하다. 은수를 위해서 아침에 북엇국을 끓인다. 인스턴트가 아닌 오래 끓여야 하는 국. 그는 오래할 사랑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은수는 자느라 북엇국을 먹지 않는다. 오래할 사랑엔 관심이 없는 은수다.

 

봄날은 간다_포스터 / 출처: 나무위키

상우와 사이가 멀어졌을 때, 은수는 대뜸 상우를 찾아와서 키스를 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아침엔 갑자기 우리 한달만 떨어져살자고 한다.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자주한다. 맞장구와 단 것을 좋아한다는 것 빼고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자는 끌어당기다가 밀어젖히기도 하고...같은 인류인 듯하면서도 또한 남자와는 전혀 다른 생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게다가 이 불가해하며 방심할 수 없는 생물은..' 상우는 결코 은수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차를 긁고 가버리는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찌질하게 차를 긁고 튀어버린 그 후에도, 상우가 마음을 간신히 다잡은 후에도 은수는 다시 상우를 찾아온다. 마치 기차가 때되면 기차역에 다시 돌아오듯 다시 온 것이다. 하지만 상우는 다시 상처입을 걸 깨닫고 이번엔 그녀를 손절친다받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바람소리에 섞여들어오는 그녀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그녀를 추억한다. 

 

'지나간 버스와 여자는 잡는게 아니다'라는 할머니의 명언을 듣고 상우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은수는 버스와 비할 수 없다. 기차다. 상우가 다시 받아줬다면 그녀는 버스보다 빠르게 떠나가고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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