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박원순의 죽음엔 권리가 없다.
- 리뷰/책
- 2020. 7. 14.
#넌 신이 아니야
어린 김영하는 참 허세 넘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 섹스, 신에 대해 그가 늘어 놓는 말들은 어딘가, 현실세계가 아닌 이야기 같다.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말하는 주인공 C는 완전한 인간 그 자체다. 신이 만든 이데아에서는 사물을 투영해서 바라보는 법이 없다. 그 자체로 완전한, 무결의 세계인 것이다. C는 모든 사람을 매체에 투영해서 바라본다. 그는 '자살 안내자'로서, 글을 통해 세연을 바라본다. 비디오아트 작가로서 영상물로 미미를 바라본다. 무결점, 순수함이 깨져버린 그의 시선은 당연하게도 '신'일 수 없다. 작가가 미미를 통해서 말한 것 처럼 '걸리지는 순간 그것은 이미 실재가 아닌 것이다.' 신이 우리를 모니터로 관찰할까? 아무리 화질이 좋아도 그건 이미 인간 그 자체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C는 이렇게 자살안내자로서 의뢰인들은 '죽음'으로 인도하면서 자신은 '삶'의 이유를 찾는다. 이것도 직업인 거지 뭐.
C는 은밀하게 대상에게 접근하여 속마음을 파헤친 뒤, 의뢰인의 선택에따라 자살로 안내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 결코 대상과 친밀해지거나 가깝게 다가가는 법은 없다. 멀리서 그저 지켜볼 뿐이다. 아, 섹스는 한다. 하고 싶나보다. 그러고도 나중엔 얼굴마저 잊어버리고 만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같다. 아무 감정없이, 스스로는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아마 의뢰인들의 삶과 죽음을 관장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는 화단에 조화를 키운다. 영원히 불멸하는 조화. 인위적으로 불멸의 대상을 만들어놓고 자위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C가 불쌍하다.
#박원순 前시장의 죽음, '모두 안녕'같은 소리하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죽음은 권리다. 자살안내자 C의 조언에 따라 자살 방법을 고르는 의뢰인들의 모습은 마치 여행상품을 고르는 것 같다. '안녕, 행복해야돼!'라는 C의 끝인사는 더욱 그렇다. 인생이란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는 것. 살든 죽든 뭐 다를게 있는가.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것도 같지만 또 아닌것도 같다. 다양한 관계들이 있지 않는가. C처럼 사이코패스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죽든 말든 아무 영향이 없지만, 인간의 삶이 어디 그런가. 박원순의 죽음이 찝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모두 안녕!'이라고 쿨내 풍기면서 죽어버리면 누가 박수라도 쳐줄 줄 알았나. 대한 민국 분열에 기름을 부었고, 피해자의 가슴엔 불멸의 상처를 새겼다. 피해자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가버린 그의 한 없이 이기적인 선택, 신에게 버림 받을 선택이다. 이는 권리가 아니라 도피이자 또다른 범죄인 것이다. 그 동안의 공을 치하하든 말든 알아서하자 다만, 지금 당면한 성폭행 문제의 진상을 밝혀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언제부터 죽음을 그렇게 신성하게 여겼다고 모든걸 덮어주려하는가. 그의 죽음은 생활고에 시달려 지하 단칸방에서 음독자살한 모녀의 죽음이 지닌 슬픔의 무게에 비교하면 한 없이 가벼운 것이다. 그렇기에 불완전한 인간에게 죽음의 권리 따윈 없다. 모두 안녕이라면서 쿨병 도져서 죽어버리지 말자.

#벚꽃엔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삶의 현실을 제대로 짚었다. 사실 삶의 현실까진 모르겠고 적어도 내 삶은 정확히 꾀뚫었다. 삶에서 선택가능한 것이 오직 죽음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지만, 오히려 현실과 딱 맞았다. 캠퍼스에 벚꽃이 필때, 나는 인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험 문제를 끊임 없이 풀어야 했다. 시시각각으로 강력해지는 문제들 앞에 나는 무릎을 꿇고 하염없이 좌절했다. 그러다가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 벚꽃엔딩이 흘러나오면 마치 저주라도 받은 듯 이어폰을 황급히 빼버렸다. 주인공 C의 말처럼, 봄은 우울을 더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방안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소설 속 K처럼 나는 세끗인생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세끗을 손에 쥐었으면서도, 그게 전부면서도 표정은 결코 좌절을 내비쳐서는 안됐다. 착한 아들, 바른 오빠의 모습을 유지해야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 실격'에서 맞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죽음의 색깔에 흥미로웠다. 패전 후 일본 그 황망한 세상속에서 몰락한 귀족이 겪는 자살과, 스스로가 여행상품 고르듯 골라 행하는 자살은 온도차이가 심했다. 죄를 피해 황급히 도망쳐버린 박원순 시장의 모습을 보니 정말 죽음은 여행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어차피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인생이지만 죽음을 선택할 권리따위는 누리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절대, 에비앙은 마시지 않겠다. 이 소설을 읽으니까 진짜 못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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