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그는 실격이 아니다.
- 리뷰/책
- 2020. 6. 13.
소설의 주인공은 지나치게 극단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인간실격이라는 그를 닮았다. 페르소나에 갇혀 살았던 그의 유년시절은, 코로나에 마스크를 쓰듯 매일 가면을 써야만하는 우리들과 닮았다. 출근해서 "안녕하십니까" 라고 말하는 대신 "어제 너 땜에 술 존나 쳐먹다가 간신히 일어나 오긴 했는데, 내 책상 위에 저 문서들 뭐냐? 설마 니가 올려놨냐, 이 양심도 없는 X끼야?" 라고 인사해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쩌면 누구나 그렇게 산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고들었기 때문에 홀로 극심하게 외로웠는지도 모른다. 남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해서, 그냥 웃겨버리고 마는 그런 상황들, 얼마나 많은가. 웃음은 약자의 대화법이라고 했다. 약자는 강자에게 그저 익살스럽게 맞장구를 쳐대며 웃음을 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역시 이런 약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이렇게 말한다. "무엇이든 좋으니까 남들을 웃기기만 하면 된다...나는 무(無)다."
삶의 이치를 너무 빨리 깨달았고 깊게도 파고든 덕에 그는 외로웠다. 머리가 좋은 탓이었을까. 이렇게 통찰한다.
"서로 속이고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상처 입는 사람도 없이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개닫지 못하는...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되어 있는 듯 합니다."
이건 별다를 것도 없이 직장생활 절대원칙이며 모든 사회인들이 매일마다 하는 짓거리다. 굳이 지적하며 파고들필요없이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면 될 것을 지나치게 걱정한 그의 잘못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자 한동안 그의 돈으로 놀고먹었던 가족들은 그를 냉담하게 대하면서 그제야 일을 시작한다. 그 사이 그레고르는 쓸쓸하게 죽어간다. 불쌍해지면 도태되는 것이고, 인간실격이라는 생각할 틈도 없이 얍삽하게 살아가야하는 것이 이세상이다.
직장에, 이 사회의 수 많은 사탄의 자식들. 뉴스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싸이코패스들을 현실에서 부딫히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이런걸 일일이 짚고 넘어진다면 이 세상을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인간실격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착하고 심신이 미약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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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크게 공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이란 자네가 아닐까?" 라는 그의 통찰도 그렇다. 모든 인간은 무지막지하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사실 남녀사이 가족관계 친구관계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기를 강력히 원한다. 결혼식장에서는 축의금의 회수가능성과 친분정도를 세심하게 분석한다. 이 여자가, 이 남자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될지를 면밀히 파악한 후 미소를 보낸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전부 자기 중심적이며 따라서 이 세상이란 결국 자네이자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다.
쳇바퀴 같은 이 삶에 대해서도 그는 깊게 생각한다. "이튿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관습을 따르면 된다...앞길을 가로막는 돌멩이를 두꺼비는 우회하여 지나간다." 이런 하루하루 쯤이야 그냥 "아 ㅈ같네"라고 퉤 뱉어버린 후 지나갈 것을 그는 신중히 곱씹은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인생을, 안타깝고 슬프다라고 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애써 누감고 지나온 것들을 붙잡고 생생하게 기록해놓았기에 우리네 삶을 뒤돌아 제대로 볼 수 있기 대문이다.
국정농단을 하고 위안부 기부금을 두둑질하고 n번방을 만드는 미친놈들이 수 많은 세상에 그는 그저 "삐빅 정상입니다."라고 넘겨버릴 한 평범하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미친놈들처럼 대담한 배포, 잊어버리는 능력이 없었기에 세상 모든 슬픔을 끌어안고 수 많은 자살시도에도 죽지 못해 약물에 빠져 늙은이에게 희롱당하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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