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빛의 제국: 중립국...중립국으로 가자 / 김영하 장편소설

2006년에 출간한 김영하의 4번째 장편 소설이다. 신문을 보다가 퀴즈쇼라는 소설로 처음 알게됐고(읽진 않았다) 알쓸신잡을 보면서 유시민 작가와 토론하는 것을 보면서 내공이 남다르다고 느꼈다. 그의 소설 하나를 읽고 싶었고, 제목이 가장 땡기는 걸 골라잡았다. 빛의 제국. 

 

상당히 심심한 소설이다. 남파한 간첩 김기영을 중심으로 각 인물들의 스토리가 4갈래로 뻗어 나오지만 소설은 그들의 모습을 그냥 CCTV찍 듯 찍어낸다. 그래서 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럴 거면 다큐3일을 봤지 굳이 왜 소설을 읽었나. 김영하는 각 인물들이 사회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김기영이 느끼는 공포는 자기 삶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그는 지금껏 자기 삶을 잘 통제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김기영은 남과북의 체제를 모두 겪었지만, 역시나 돈 맛을 보고는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한다. 아무 동기조차 없이 무기력한 사회주의의 허망함에 실망한 그는, 처음 본 자본주의 사회의 찬란함 앞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이 지옥열반도에서 20년을 굴러먹은 그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깨닫는다. 자본주의란 노동자인 인간을 개쓰레기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다는 것을...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적 권태에는 무게와 질량이 있었다. 그것은 삶을 짓누르고 질식시키는 유독 가스처럼 느껴졌다. 가끔 어떤 종류의 인간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라는 경계심을 불러 일으킨다.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제국 / 출처:YES24

내 인생,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고, 평생 일해도 집 한채 살 수 없는 헬조선을 그는 미리 내다본 것일까. 김기영과 그의 아내 장마리 그리고 딸 현지 모두 자신의 인생을 통제 아래 두지 못한다. 간첩이 주인공이라고 총쏴대고 유리창 깨고 탈출하는 장면은 한차례도 없지만, 그냥 담담하게 보여주는 그들의 일상이 오히려 더 무섭다. 

 

김기영은 마치 카프카의 소설 '변신'처럼, 하루 아침에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야할 처지에 놓인다. 북으로의 귀환 명령을 받은 그는 혼란스럽다. 갑자기 떨어진 4번 명령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질극 같은 저항도 없다. 그냥 심심하게, 무기력하게 아내에게 거절당하고 안기부 직원이 주는 전자팔찌를 찰 뿐이다. 아내 장마리는 젊은 남자와 외도를 하는데, 어딘지 그의 의도는 아닌 것 같다. 침대 앞까지 가기 전, 수 많은 거절의 기회를 모두 날려 버린 그녀는, 다리를 벌리고 두 명의 남자를 수동적으로 받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딸 현지도 마찬가지다. 마구 들어와버리는 남자친구의 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장마리의 외도나, 딸의 친구집에서의 에피소드는 왜 나온건지는 잘 모르겠다. 김기영 스토리와 별로 연관도 없다. 인생에 대한 통제 실패를 보여준거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은 모두 어딘지 빛한 점 없이 어두컴컴한 분위기다. 이렇게,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이 가장 무서운 것이다. 국어선생인 소지는 기영에게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 오직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들 사는 것 같아. 왜 나만 그걸 몰랐을까?"

 

자본주의에서는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쳐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에서는 스스로 할 수 있는게 있느냐? 스스로 무언가를 하다가는 총살당하는 사회다. 기대할 것 조차 없다. 그러니 기영은 답답하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은 "중립국...중립국으로 보내주시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기영은 그 조차 선택할 수 없다. 

하루종일 시키는 일만하는 회사원들에게도 중립국따위는 없다. 오로지 자본에 대한 충성뿐이다. 자본은 총살을 시키지는 않으니, 북한보다는 헬조선이 낫다고 애써 믿을 뿐이다.

공지사항

최근 글

최근 댓글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