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그저 동화같은 이야기 / 히가시노 게이고

*스포있음

#모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이거 동화냐?

요즘 인간수업, 부부의세계, 타인은 지옥이다 등등 화려한?성악설 영상들을 보다보니 녹나무의 파수꾼이 주는 잔잔한 감동실화는 크게 와닫지 않았다. 회사에만 해도 사탄의 자식들이 미쳐날뛰고 있는데, 모든게 술술 잘풀리는 소원들어 주는 나무라니 초반부터 싸늘하게 마음이 식어버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무려 게이오의 명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후 첫 소설이고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평이 좋다. 많은 게이오 팬들이 듣기에는 매우 불편한 첫 인상이니, 내 마음이 썩을대로 썩어버린 탓이다.

기억전달 매체인 녹나무는 소설에서는 세대를 이어 사념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말로는 표현 못하는, 언어의 한계때문에 전할 수 없는 모든 기억, 추억 등등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런데 녹나무의 이런 기능은 소설 중반부 이후에 나온다. 그 전에는 주인공이 녹나무의 기능을 찾는 추리게임을 하는데 역시 추리소설을 쓰던 게이오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추리의 정답이라는 것이 기도하면 기억을 전달해준다는 것에서 허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기억을 전달해주는 것을 통해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인물들이 갈등을 겪지도 않는다. 이대로 끝나는 거야?라고 생각을 계속하다가 정말 소설이 끝나버렸다.

소설은 녹나무를 배경으로 삼아 각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담는다. 밑바닥 인생인 레이토는 파수꾼으로서 성장하고, 사지와 유미는 가족간 불화를 타개하고 형님의 음악을 완성시킨다. 차후네는 단기 기억상실이란 병을 이겨내고자하는 의지를 다잡고, 기업을 물려받은 소키도 경영에 대한 결심을 하게된다. 모든 일이 녹나무와 함께 술술 풀리니 어딘가 맥이 빠진다. 현실은 과연 그런가? 학업도 경험도 미천한 레이토가 대기업 임원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그 의견이 채택된다? 미생보다 더한 판타지 드라마이다. 지금껏 쫄아서 아무것도 못하던 소키가 갑자기 레이토 충고 한마디에 위풍당당하게 기업을 경영하려하는 것도, 사지와 유미가 만든 음악에 인지 장애가 있던 할머니가 돌연 눈물을 뚝뚝 흘린다는 것도 너무, 너무 유치하다. 어색하게 눈물 짜네는 신파극과 다를게 없다. 이는 녹나무의 능력이 너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스토리상 인물이 세대를 거쳐 기억이 전달되는 것이 핵심인데, 그 과정이 너무 순탄해서 긴장감이 없는 탓이다. 그 때문에 성장을 한 인물들에게 공감이 쉽게 안가기도 한다. 거저얻은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이토는 교도소에 갈 뻔하다가 운좋게 부자 이모를 만나서 하는 거라곤 경내 청소랑 예쁜 여자와 아버지 여자친구는 누굴지 추리게임을 좀 하는 것 뿐이다. 뭐가 성장한 건지, 갑자기 소설 말미에 임원회의실에 뛰쳐들어갈 생각은 언제 왜 어떻게 하게된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예전에 방영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내 군생활 유일한 낙이었다. 일과가 힘들었어도 이걸보는 30분 정도의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결말에서 유쾌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 두명이 사망한다. 너무 충격적이고 작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 어떻게 좋은 일만 있겠어요” 맞다. 그게 인생인거다. 당장 1분 앞도 모르는 인생살이인데 이념, 의지만으로 척척 해결해나가는 이 소설이 유치하지 않을 수 없다.

 

 

녹나무의 파수꾼 / 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89386272

 

#동전 던지기 따위는 하지말고

녹나무 파수꾼을 하면서 레이토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파수꾼이 되기 전 레이토는 구속될 위기에서 변호사를 선임할지 말지를 동전 던지기에 맡긴다. 레이토는 변호사에게 “망설여질 때는 항상 그렇게 하거든요...그래도(결과가 나오면) 포기가 되니가요 이게운명이다, 하고”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버리지만 그렇다고 앞날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데요?” 라고 반문하며 답은 못찾은 그 였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김다미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새로이가 운영하는 단반에 들어갈 것인지,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를 두고 그녀도 레이토 같이 동전을 던진다. 그런데 그 장소가, 강 위다. 동전을 강 위로 높게 던졌다. 그것은 간단히 김다미의 손을 지나 흐르는 강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이렇게 말한다. “됐어 그냥 내 맘대로 할래”
신중히 고민해야 할 순간에도 동전을 던지고야 마는 레이토는 녹나무를 비롯해서 유미, 치후네를 만나면서 성장한다. 유미는 콘서트홀의 음향설계를 하는 것을 꿈으로 이미 정했고, 아버지의 불륜을 밝히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삶에 덤벼드는 사람이다. 치후네 역시 회사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호텔을 성장시켰다. 소설 말미에는 레이토도 치후네, 유미에게 영향을 줄만큼 성장한다. 유미에게 기념할 것을 제안하고, 차후네에게 1년의 시간을 벌어다 준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 레이토는 쉽게도 해냈지만, 사실 참 어려운 일이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본이, 돈이, 상사가 시키는대로 살 뿐이다. 녹나무는 현실에 없는 것이니, 더 한탄스럽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동전을 만지작 거릴 수 밖에...

주제에 비판도 해봤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쉬는 날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아 그래 이런 따스한 순간도 있었지 라고 회상하며 각볍게 읽어보기는 좋다. 진행이 늘어지지 않고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주인공이 코난 빙의해서 추리를 하는대목들은 지루하지 않다. 치후네와 하는 농담 따먹끼식 대화도 재미라면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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