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 그래서, 정규직 전환 되나요?
- 리뷰/영화
- 2020. 7. 2.
내 처음이자 마지막 인턴은 신문사 사진부 기자였다. 복학하고 처음 맞는 방학. 뭔가는 해야하는데 죄다 떨어졌다. 학교 게시판을 뒤적이다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신문사 인턴 공고에 지원했고 어쩐 일인지 합격을 했다. 하지만 내가 배치 받은 곳은 사진부였다. 셀카 한 장 제대로 못 찍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하며 열심히 굴러다녔다. 당시 세월호가 한창이라 카메라를 들쳐 메고 한 여름에 여기저기 시위현장을 다녔다. 뭐하나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아서 공부하랴 사진찍으랴 바쁜데, 술을 왜 이리 마셔데는지 점심에도 한병 씩은 먹었다. 굴러먹다보니 신문 4면에 사진이 실리기도 하고 짧게 글도 써보고, 꽤 재밌었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당시 월급 따윈 없었고, 정식기자로 전환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내가 느낀 인턴은 그저 곁다리, 소모품 같은 것이었다. 회사는 몇 개월 있다가 떠날 나에게 큰 애정도, 돈도 주지 않았다. 인턴은 사회로 나가는 징검다리의 의미를 잃었다. 그저 기업에겐 골라쓰고, 학생에겐 스펙 한 줄 정도 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인턴이라는 가슴아프고 쓸쓸한 이름을 더럽혔다. 슈퍼맨 인턴을 앉혀놓고, 감독 본인(낸시 마이어스)이 여성으로서 겪은 트라우마를 쏟아내기에 바쁘다. 최근 방영 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 같이 대놓고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스토리는 인생 경험 풍부한 벤(로버트 드 니로)이 젊은 CEO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조언을 하며 힘들어하는 줄스를 치유한다는 내용이다. 줄스는 회사를 위해 전념하는 전형적인 성공신화를 쓰는 경영자다. 하지만 너무 바쁘다보니 가정과의 균형이 무너진다. 벤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그녀를 괴롭힌다. 남편은 바람을 핀다. 3살 먹은 아이처럼 사랑을 못받는 것이 서러워 다른 여자를 만난며, 갑자기 영화 말미에 사과한다. 가정부도 집에 있는데, 집안 일 하느라 남자는 항상 졸리고 피곤한 모습을 유지한다. 침대에서 줄스와 대화하다 잠이 들어버린 그의 모습은, 마치 '줄스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무기력한 남편이 받쳐 주질 않는다.' 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딸이 다니는 유치원 학부형들은 워킹맘인 줄스를 돌려깐다. 마치 '전업 주부들은 꼰대 마인드에 배운 것도 없다.'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영화는 집안 일 하는 남자와 전업 주부들을 무시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전화로 평범한 대화를 하려는 것 뿐인데, 줄스에 의해 딸을 들들 볶는 잔소리 꾼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워킹맘은 우주 최고의 존엄한 존재인 것이다. 영화는 줄스를 통해 워킹맘들은 주변의 모든 잡스러운 문제들을 끌어 앉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줄스는 아무 잘못 없다.
이런 잡스런 문제들은 인턴인 벤이 후다닥 해결해준다. 어떤 갈등도 어떤 방해물도 없다. 그렇다고 노인의 재취업에 대한 메시지, 인턴 제도에 대한 문제점 또한 없다. 가족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이라지만, 그렇다기엔 워킹맘 우주 최고라는 메시지가 너무 악랄하다. 꼰대 할아버지 인턴이 오만방자한 젊은 CEO와 서로를 치유하는 내용이었으면 어떨까 싶다. 뜬금 없이 주거 침입하고 마사지사랑 사내연애하는 할배 인턴은 볼 가치가 없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 근무시간에 공원에서 태극권을 해버리는 용감한 인턴을 보며 든 생각은 딱 하나다. 이 할아버지...정규직 전환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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