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2권: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

 자본주의는 많은 병폐가 있지만, 역사적으로 사회주의에 승리한 것은 사실이다. 1권에서 김범우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은 소작인은 이렇게 말한다. "고딴게(공동의 토지를 함께 농사 후 분배받는 것) 무슨 평등입니까, 자기 밭의 배추가 속이 더 여물찬 것이 사람 본성인데"

 모두의 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것은 경제학 이론으로 증명됐으며,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상 모델(코즈 정리)이 제시되는데, 이 또한 돈(자본)에 의한 해결이다. 그런데 왜 염상진이나 이하 하대치, 안창민 같은 인물들은 사회주의에 목메는 것일까, 2권에서는 각 인물들이 생각하는 정의(JUSTICE)를 소개하고있다. 마르크스의 여러 저서들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우선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어보고 정의에 대한 내용을 참고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 

 

염상진은 제국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무산자들에 의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꿈꾼다. 

 

'인간을 노예화한 봉건 왕조와 절대다수의 인간을 수단화한 제국주의의 역사는 바야흐로 사회주의 새 역사의 비판 앞에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 정신적으로 가장 사회주의에 대한 무장이 돼있는 염상진도 혁명적 운동 참여의 시작은 가족에 대한 생각에서 였다. '그 아이들(덕순, 광조)한테서 노예쩍 삶의 굴레를 하루라도 빨리 벗기기 위해서라도 혁명의 수행은 우선순위에 놓여야만 했다' 라는 그의 독백에서 이를 느낄 수 있다.  

'적에게 해악를 가하고 선에 이익을 주는 것'(국가론, 폴레마르코스)이 정의라면 염상진이 무산자 혁명을 위하는 것이 정당하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바뀌면서 친일세력들이 제거되고 사람들의 평판에 따라 죄상 유무를 가려냈고 하니 염상진이 꿈꾸는, 악한자가 벌받고 선한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염상진 아내는 온갖고초에 시달리고 공산당을 증오하는 지경까지 가지만... 

염상진은 아마도 소작인들이 뼈빠지게 일하고도 쌀을 다 뺏겨버리는 현실에 비관하며 누구의 소유도 없는, 공동 생산, 공동 분배가 이러한 사태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평등사회는 플라톤도 국가론에서 언급했다. 

 

"재물은 물론 가족까지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하네, 그것이 내 것과 네 것을 없애고 분열을 막는 길이며, 행복과 불행을 공유하는 길이지. 그렇게 되면 사유재산이 없으므로 쓸데없는 사건이나 소송에 휘말릴 일도 없을 걸세"(국가론)

 

플라톤은 사유재산을 공동소유를 넘어서 가족까지 공유하자고 한다. 오히려 한단계 더 나아간 이야기인데, 이는 우성인자끼리 결합시키자는 충격적인 내용이니 이는 차치하자. 아무튼 플라톤도 소유라는 개념이 인간의 탐욕을 불러와 국가에 해가 된다고 본 것이다. 

 

염상진과 염상구 / 출처: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u7MB&articleno=7256

반면, 염상진 아래의 하대치, 강정우는 계급혁명, 사회주의 이념 보다는 눈 앞의 가족에 더욱 집중한다. 평생 고생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리라는 결심을 한 것이다. 강동식은 어떤가, 강동식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사회주의에 몸담은 동기이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조직을 이탈하여 위기상황을 만든다. 이게 가장 인간답다. 우리는 다 강동식처럼 살고 있는게 아닐까. 염상진 역시 이런 현실적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더욱 높은, 사회 시스템, 근본적인 해결에 생각의 차원이 올라가 있는 것이다. 

 

작품 속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인물들 중 손승호, 남인태가 있다. 손승호 역시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농부와 같이 인간의 본성에 주목한다. 기게스의 반지(절대반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남들이 모른다면 악행을 저지르고 싶어한다. 내가 하는 짓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면? 어릴 때야 여탕가기, 싫어하는 친구 때리기 같이 유치한 장난을 생각하겠지만, 순수한 마음이 지워지고 탐욕이 일상이 되버린 뒤에는 사회를 전복시킬 만한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이 모여 구성된 사회에서 무슨 공동분배따위가 가능할 것인가. 손승호는 "인간이 갖고 있는 만큼의 모순과 부정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하오.' 라며 민주주의, 공산주의 모두 인간이 만든 이기적인 지배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남인태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주의를 경멸한다. 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결국 지배하는 사람이 하는 것들이 정의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일본놈 세상에서는 일본놈 편에 붙고 미국놈 세상에서는 미국놈들 편에 붙어 살았다. 그에게 빨갱이란 강자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로 방해되는 귀찮은 존재이다. 그래서 그는 하필이면 빨갱이들이 많은 벌교에 있는 것이 운이없다며 빨리 뜨고 싶다고 말한다. '(이남이 수박이라는 말은)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이남은 겉은 푸르고 속은 붉다는 뜻이었다. ...재수 없게 왜 하필이면 전라도하고 경상도에 빨갱이들이 들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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