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1화: 죽음의 권리에 대하여
- 리뷰/드라마
- 2020. 3. 14.
99학번 의대 동기 다섯명을 중심으로 병원에서의 이야기가 나온다. 각 인물들의 소개가 나오는 가운데,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한 아이가 나온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1. 빼앗긴 죽음의 권리
아이는 3년째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인데, 삶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있다. 의사들도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 어머니만은 이 악물고 아이를 살려내라한다.
중세시대 기사들은 죽을 때가 되면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죽음을 대비했다. 또, 그 후에도 죽을 때는 집안에서 모든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죽음을 지켜봤다. 삶의 공간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구분을 하지 않은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 등 전쟁을 겪은 후 죽음은 악한것으로 인식되며 현대에 접어들면서는 수치스럽고 금기시 된다.
2. 죽음으로 돈 장사하는 병원
그래서 드라마속 아이의 어머니는 삶의 공간인 집이 아닌 병원에 아이를 놓는다. 그리고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 애쓴다. 율제 병원에서는 키다리아저씨 안정원(유연석)을 통해 수술비를 해결해주시만, 현실에서는 많은 환자들이 죽어가는 자에 대한 수술비 부담을 안고 산다. 환자는 쉽게 죽지 못하는 것이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약물을 투여한다. VIP특실은 하루에 몇백만원씩 받아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환자를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병원을 살찌운다. 이는 죽을 때 까지 해야할 도리를 다했다는 도의적 편안함을 스스로 갖기 위함이고, 병원은 이를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때는 돈이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기 부지기수인데, 왜 죽을 때는 존엄성을 내세우며 돈을 받아내는 것일까.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에서도 이반 일리치는 '나 좀 죽게 해 달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와 죽음, 어울리는 한쌍이다.
참고문헌: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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