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클라쓰: 조이서 / 평생 페르소나에 갇혀살래? / 나를 갉아먹는 착한아들 페르소나

1. 페르소나에 대하여 

 

조이서를 얘기할 때, 외모얘기가 거의 99%이지만, 

다른 느낀 점이있다. 예쁜데 왜그래...

이태원클라쓰에 대한 얘기는 뒤에서하고 페르소나에 먼저 생각해봤다.

 

사람을 뜻하는 person는 라틴어 페르소나에서 유래했다. 

페르소나란 본인에게 씌우는 가면이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적당한 가면이 필요하다. 부하직원으로서의 역할, 부모,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위해서는 사회에서 요구하는대로 행동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매일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 

 

 

짐캐리는 마스크에 완전히 잠식당한다(영화: 마스크, 1994) / 출처: https://ferstx.tistory.com/1172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느끼기에 올바른 행동, 생각을 페르소나에 담아 얼굴에 씌었다. 학교에 남아 자습하고, 말썽 안부리고, 회사에서는 시키는대로 

반문하지않고 타협하며 산다. 그리고 앞으로는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서 적당히 돈벌어서 집을 살겠지

 

그런데, 이는 부모님이 나에게 씌운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씌운 것을 이제는 내가 스스로 썼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인데,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말에 순응하다보니 그게 그냥 나인 줄 알고 살게 된 것이다. 착한아들 페르소나와 나를 완전 동일시 하다보니 진정한 나는 억압하고 살았다. 한국에 나같은 사람들 많을 것이다. 

 

부모들은 어찌보면 본인들의 희생을 무기로 자식들을 협박한다. 드라마에도 보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대사가 많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나를 어떻게 키웠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패륜하자는 말이 아니고, 효도야 하면 되는거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페르소나에 갇힌 삶은 정말 의미가 없다. 그게 부모님 삶이지 내 삶인가? 물론 그게 내 삶일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 성찰을 해봐야한다. 가면이 진짜 내가 맞는가. 나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다. 

 

2. 조이서, 가면없이 맨얼굴로 살아가는 캐릭터 

 

조이서는 페르소나 자체를 거부한 캐릭터다. 조이서는 어머니는 남편 없이 홀로 이서를 키우기 때문인지, 이기심, 승리, 1등 이런 가치를 주입한다.

 

운동장에서 친구를 밀어버리고 1등을 차지한 초등학생 이서에게 오히려 칭찬을 한다. 더욱 높이 오르지 못한 자신의 꿈을 이서를 통해 이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본인의 페르소나를 이서에 투영시키려 한 것이다. 

 

 

조이서 / 출처: JTBC

 

그런데, 이서는 오히려 반문한다. 

"엄마 지금 내가 1등했다고 칭찬하는거야?"

승리는 분명 이서가 정한 가치이지만, 타인 또는 사회가 자신에게 그 가치를 주입하는 것을 보고있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안가고 단밤에 다니는 걸 들킬때도 이서는 당당하다. 엄마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를 시전하자 

"잠깐만 슬퍼하고 있어" 라며 집을 훌쩍 떠난다. 딱히 엄마를 위로하지도, 둘이 부둥켜안고 청승을 떨지도 않는다. 가면을 쓰고 연극무대를 꾸밀 필요가 없는 이서에게는 별일도 아니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결정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각 구성원이 역할에 맞는 가면을 써야만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해야하고 회사원은 회사원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한다. 

 

그래서 가면이 아닌, 진정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찾아낸 나의 모습이 이 사회의 요구에 맞지않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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